- “배우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


김명민은 두 손으로 갈비뼈께를 자꾸 어루만졌다. 새 영화를 위해 52kg까지 감량했던 몸에 얼마나 살이 붙었는지 확인하느라 생긴 버릇이다. 회복 중인 그의 몸무게는 아직 정상치를 한참 밑도는 63kg에 3주일째 머물러 있다. 몸을 재료로 일하는 직업의 딱한 일면이다. 김명민은 유난히 고되게 연기하는 배우다. 팔자와 천성이 맞물린 결과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연기자로서 묵직한 일감을 얻기까지 과정이 고됐고,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잡힌 굵직한 배역들은 하나같이 고된 수련을 요구하는 난제들이었다. 명장(名將) 이순신(<불멸의 이순신>), 명의 장준혁(<하얀 거탑>), 명지휘자 강마에(<베토벤 바이러스>)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미덥게 보여주는 데는 샛길이나 우회로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김명민에겐 배역이 요구하는 데 스스로 한술 더 얹어 감당하는 습관이 있다. 갈채가 돌아왔고 신뢰가 쌓였다. 능숙히 집도하고, <합창교향곡>을 외워 지휘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대가였다. 최고의 전문가이자 원칙주의자라는 점 외에 이순신은 혁신을 꿈꾸는 햄릿형 인간이었고, 강마에는 엘리트주의자였으며 장준혁은 지독한 실리주의자였다. 그런 면모들을 놓쳤다면 김명민에 대한 평가는 묘기를 향한 찬탄에 그쳤을 것이다.

그의 신작은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이 연출하는 멜로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다. 지금껏 김명민은 사랑보다 힘을 구하는 인물, 이미 가진 힘을 더 키우고 싶어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다. 그를 눈물겨운 멜로드라마에 불러들인 연유를 묻자 박진표 감독이 지적했다. “눈과 목소리가 굉장히 로맨틱할 수 있다고 봤어요. 몸에 마비가 오면서 눈으로 말하는 연기가 많은데 김명민씨는 아주 맑은 눈을 가졌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충혈되지 않아 놀라울 정도죠.” 눈도 눈이지만, 김명민의 목소리가 지닌 설득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터다. 교통을 마비시키는 미남도 아니고, 육체적 존재감도 평범한 김명민이 비장(?藏)한 위력적인 ‘칼’은 중후하고 입자가 풍부한 목소리다. 그 울림은 보는 이의 감각을 소스라쳐 일어나게 하고 드라마의 폐부로 즉각 끌어들인다. 멜로드라마에는 억눌린 고통을, 스릴러에는 긴장을, 코미디에서는 태연자약함을 대뜸 넘쳐흐르게 한다. 특히 권위적인 인물을 연기할 때 스스로 충전해가며 말하는 듯한 김명민의 화법은, 단호한 영역표시의 액션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물론 멋진 페르소나와 좋은 연기는 혼동되기 쉽다. 그러나 김명민이 문소리, 황정민 등에 이어 한국의 탁월한 캐릭터 배우로 자리를 다졌다는 사실은 확고하다. “저는 배우에 부류가 있다고 배우지도 않았고 무조건 메소드 연기를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기술적인 것은 다른 유형의 연기에서 얻어온다 해도 임하는 자세는 메소드 연기죠. 배우의 ‘배(俳)’는 사람 인 변에 아닐 비 자가 더해졌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너 자신을 잊어야 한다, 연기하는 순간에는 김명민이 보이면 안된다고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점 의심이 섞이지 않은 그의 말이다. 애석한 노릇이다. 우리는 이미 배우 김명민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전유물이라고 확신하는, 우연의 마법조차 필연적 준비를 완수한 다음에야 일어난다고 믿는, 방심을 모르는 한 연기자에게 우리는 주의를 빼앗겼다. 돌이키려 해도 너무 늦었다.

-박진표 감독의 새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촬영이 지난 5월에 끝났습니다. 루게릭병 환자 백종우를 연기하느라 감량했던 체중도 회복 중인 걸로 압니다. 백종우라는 인물에게서 좀 벗어나셨나요?

=아직, 뭐라 말씀 못 드리겠어요. 후반 촬영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몸은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는데 뒤로 갈수록 극도의 집중이 필요한 연기가 요구돼서, 그 둘 사이 격차가 벌어졌어요.

-촬영 말미의 기억이 혼미한 거군요.

=스탭들 이야기로는 사람을 잘 못 알아보고 방향감각도 잃어서 위태위태해 보였다는데 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 생각엔 괜찮은데 감독님이 느닷없이 40분 쉬었다 하자고 제안하셔서 의아해했던 일도 있었어요. 앉았다 일어날 때는 조심스러웠어요. 갑자기 일어나면 저혈당증 때문에 쓰러지는데 넘어지면 회복하기 힘들잖아요. 최소한 촬영하는 도중에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만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숙소에서 한두번 기절 비슷한 것은 했지만 촬영장에선 버텨보려고 했죠. 그래도 침대에 누워 있는 신이 많다 보니 잠깐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 같긴 해요.

루게릭 환자 연기, 살빼기 전쟁



-<내 사랑 내 곁에>의 백종우는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영화가 진행될수록 몸이 점점 굳어가는 인물입니다. 배우로서는 신체 표현의 도구를 점점 줄여가며 연기를 해야 하니 큰 부담이 아니었을까요.

=그 부담 자체를 무기로 생각한 거죠. 예를 들어 외과의사 역을 할 때에는 수술하는 모습이 얼마나 리얼한가가 무기예요. 아무리 다른 연기를 잘해도 수술장면이 엉성하면 사람들은 그 인물을 의사로 보는 게 아니라, 김명민이 의사를 연기하고 있다고 인식하니까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답답했던 건 표현력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제가 뭔가를 배우면 해결되는 연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계속 몸이 말라가고 진짜 마비가 진행되는 환자처럼 보이는 것이 무기였는데, 그건 미리 준비를 해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시작은 72kg에서 했는데 과연 한달 뒤, 3개월 뒤에 몇 킬로그램이 될 것인가 하는 불안에 나 자신을 끝까지 불신했죠. 그런데, 중압감 때문인지 살이 빠지더라고요. 촬영 시작 20여일 만에 10kg이 줄었어요. 도리어 촬영 속도보다 감량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문제였죠. 나머지 2개월간 어디까지 내려가야 계속 마르는 것처럼 보일지 고민했어요. 결국 내가 기준을 정하지 말고 누군가 그만두라고 말릴 때까지 그냥 계속 내려가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백종우 같은 캐릭터의 위험은 자칫하면 성격이 보이지 않고 병만 보일 수 있는 점 같습니다. 병과 별도로 종우라는 인물이 원래 어떤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가정하셨습니까?

=낙천적인 인물이죠. 나중에 대뇌신경에도 장애가 미쳐서 우울증이 오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증상일 뿐이고 백종우는 원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단단하고 의욕이 강한, 그래서 먼저 여성에게 프러포즈도 할 수 있었던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내 사랑 내 곁에>를 준비하면서 감독님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씨 인사이드> 등 영화 몇편을 추천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기존 영화 중에서 참고할 만한 영화는 없었어요. 루게릭병에 대한 영화는 단 한편도 없더라고요. 야구선수 루 게릭의 다큐멘터리를 보긴 했지만, 병명의 유래에 대한 정보를 얻은 정도예요. 한양대병원에서 준 자료 정도를 제외하면 데이터가 너무나 부족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구할 수 있는 건 전부 파킨슨병과 뇌졸중에 관련된 자료뿐이었죠. 실제 환자분들을 만나서 얻은 도움이 가장 컸지만, 그 또한 원하는 만큼 제가 취재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니거든요. 환우분 가족들로선 거부감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찍다 보니 왜 루게릭병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왜죠?

=마지막에는 손목이 7, 8살 아이들보다 더 가늘어지는데 CG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배우도 어차피 사람인데 이 역할 끝나고 다른 작품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몸이 도구인 직업이니 더욱 위험한 것 같았어요. 앞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다그치고 채찍질해주는 연출자가 좋다



-김명민씨는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이고, 촬영에 들어가면 병을 얻을 정도로 힘들게 연기하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심적으로 고생을 덜한 작품은 결과가 별로 안 좋았다. 내가 힘들고 괴로웠던 만큼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요. 혹시, 자신을 호되게 혹사하지 않으면 일을 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유형인가요?

=혹사하지 않으면 개운치가 않아요. 무식한 스타일인 거죠. (웃음) 연출자가 저를 믿고 의지하는 건 싫어요. 내가 부족하다고 자꾸 다그치고 채찍질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어땠어요?” 여쭤봤을 때 “어, 너무 좋아” 그러면 뭔가 불안해요. 그렇다고 전체를 보는 감독 앞에서 배우가 매번 욕심부리며 한번 더 가자고 떼쓸 수도 없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이러저러하게 바꿔서 달리 한번 해보자”고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긴장하지 않고 연기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스타일의 동료들이 부럽기도 하겠습니다.

=엄청 부럽죠. 민망하기도 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쉬는 시간에 말도 안 하고 책 들이파다가 시험 보면 점수가 별로잖아요. (웃음) 전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걸 어쩌겠어요.

-학창 시절에도 숙제부터 해치우고 노는 편이었나요? 해야 할 일들이 있으면 가장 힘든 과제부터 해결한다거나 식탁에서 맛없는 음식부터 먹는 습관이 있진 않았고요? (웃음)

=왜요.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죠. 금방 없어지잖아요. 방학숙제는 모 아니면 도였어요. 방학식 날 해치우거나 개학 전날 몰아서 했어요. 방학식 날 <탐구생활> 다 해버리고, 나가서 곤충 다 잡아오고 일기도 한달치를 몽땅 써놓았어요. (좌중 폭소) 경험을 통해 보면 방학이란 것이 굉장히 짧단 말이죠. (웃음)

-교회 연극, 그러니까 성극이 최초의 연기 경험인가요?

=유치원 다닐 때 꼭두각시 연극을 하면서 무대란 곳에 처음 섰다가 큰 호응을 얻었어요. 교회 연극에서는 예수님, 베드로, 요한 역 등 두루 해봤고 목사님 가운 뒤집어쓰고 사탄 연기도 해봤어요.

-어린 나이에 무대에서 객석을 내려다보는 앵글이 낯설진 않았나요? 한 사람이 다수 시선 속에 있는 상황이 처음부터 편안했습니까?

=오히려 앞에 사람이 없으면 공연하기가 싫었어요. 제가 춤을 잘 춰서 친척 모임부터 교회 수련회, 학교 소풍 등 사람 모이는 자리면 무조건 불려 나갔어요. 마이클 잭슨 춤을 잘 추는 다른 친구 한명과, 막춤 추는 제가 항상 듀엣으로 나섰던 기억이 나요. 그 인기로 반장도 되고 ‘뭐가 빛나는 밤’류의 학교 행사마다 연극을 했어요. 연극 연습하느라 밤 11시, 12시에 귀가하곤 했어요. 지구별 성극대회 출전 준비도 하고요.

-세상을 바라볼 때 기독교 신앙이 여전히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나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면 반대로 나아가기도 쉽잖아요.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과 많은 분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반항의 시기는 있었죠. 모태신앙이라 왜 내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을까 불만도 있었고요. 가족이 이른바 8학군 지역에 살았는데, 교회가 멀다는 한 가지 이유로 제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 수색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교육이나 부동산 투자에는 부모님이 전혀 관심이 없으셨던 거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나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참으로 어이없이 당했다는(?) 생각을 했죠. (폭소)

-일찍부터 관객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 셈인데, 남을 설득하는 데 얼마간 자신감이 있었겠어요.

=제 어린 시절은 딱 반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골목대장 노릇을 6년쯤 즐겁게 하다가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진 중3, 고1부터 고통스러운 시기로 접어들었어요. 신학대 가라는 아버지, 공대 가라는 어머니 말씀을 들으며 이과 학생으로 생활하다가, 진로 선택할 때가 닥치니 더 감추지 못하고 제 의사를 밝혔죠.

-서울예대와 극단을 거치면서 다양한 연기수업을 거쳤을 텐데, 어떤 훈련이 가장 유용했는지 기억할 수 있나요?

=내가 고양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하고, 별의별 훈련을 다 하죠. 내 몸을 이완하는 신체훈련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몸의 모든 근육이 긴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 부분이라도 불편하면 절대로 연기가 나오지 않아요. 연기는 완전히 편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이완되기 위해선 몰입해야 해요. 몰입하면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못 느끼거든요. 몰입에 실패하면 어깨부터 자세가 불편하고 손 하나 올리는 것도 어떻게 올려야 할지 모르고 다 계산을 해야 하죠.

-하긴 전문 연기자와 비전문 연기자의 가장 큰 차이가 손 처리라는 말도 들어봤어요.

=손은 가장 큰 장애예요. 풀숏(전신이 잡히는 숏) 연기가 몹시 힘들거든요. 솔직히 바스트숏은 진실성을 갖고 눈빛으로 표현하면 전달되는데, 풀숏은 눈빛이 안 보이잖아요? 몸에 힘이 들어가면 안되고 손끝에서도 감정이 나오니까 풀숏을 보면 다 들통나요. 저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어요. 어떨 때는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니까요! 주머니에 손 넣은 연기, 정말 보기 싫은 연기 중 하나인데 본인이 알아도 손을 처리할 방도를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연기자가 풀숏에서 주머니에 손을 몇번 넣다빼는지 세어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배우는 진열돼 있는 상품”



-SBS 6기 공채 탤런트가 되기 전에는 연극을 하셨지요? 술도 마시지 않고 연습만 했을 것 같은데요.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드려야 했어요.열심히 공부했고 4학기 동안 80% 정도 장학금을 받았어요. 저처럼 학교와 도서관에만 매달리는 건 드문 경우였는데 선배들한테 “그런다고 졸업하고 할 게 있는 줄 아냐? 선배들 잘 쫓아다니는 게 남는 거야”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한귀로 흘렸어요. 당시 저는 연극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무슨 출세를 빨리 하겠다고 돌아다니며 술 마시고 어울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때 학교에 탤런트 형들이 오면 후광이 비쳤어요. 잘생기기도 했지만 공채 기수 탤런트라는 사실 하나가 성공의 기준이었거든요.“애들아, 안녕” 하면 다들 쓰러졌지만 저는 무덤덤했죠. 그러다가 극단 생활을 하면서 조금 이해가 됐어요. 코러스와 단역만 계속하다 보니 이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내가 극단에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가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리겠다는 걸 절감하겠더라고요.

-극단의 길이 끝이 안 보여서 방송사로 눈을 돌리신 건가요?

=생각이 없었는데 매형이 원서를 갔다줬어요. 그냥 잊고 있었는데 마감 하루 전날, 매형이 SBS 근처에 갈 일이 있으니 접수하겠다며 사진을 갖고 오라는 거예요. 집 장롱 앞에서 찍은 사진을 붙여 냈죠. (좌중 폭소) 나중에 합격한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스튜디오에서 100만원, 50만원 주고 찍었더라고요. 붙은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심사하신 분들이 조신 건지, 풀을 많이 칠해서 서류가 딸려간 건지. (웃음) 면접 땐 정장 차림을 요구했는데 양복이 한벌도 없었어요. 전날 밤 시장에서 유일하게 문 연 양복점에 들어가 사이즈 맞는 옷을 샀는데 시골 아저씨들도 안 입을 촌스러운 양복이었어요. 거기다 베스트까지 맞춰 입고 주황색 넥타이 매고. (웃음) 본의 아니게 코믹한 사람이 된 거죠. 주변은 모두 F4 같은 꽃미남뿐이었는데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내가 할 것 하고 왔는데 붙었어요. 믿기지 않았죠.

-배우의 길을 일찍 선택해 한눈팔지 않고 걸어왔는데 오랜 시간 방송사에서 단역만 하게 되니 나는 어떤 부류의 배우일까,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생각이 복잡했을 것 같습니다.

=“이러실 거면서 저를 왜 뽑은 거예요?” 물으면 “넌 어디 가져다놓아도 쓰기가 좋아서”라는 말을 들었어요. 쓸모가 많아서라는 거죠. 애초부터 주인공 외모는 아니고 단역으로 쓸 의도였다는 거죠. 잘생긴 친구들은 단역으로 불러다놓으면 너무 튀어요. 웨이터가 주연보다 잘생기면 주의를 끌잖아요. 그런데 전 웨이터 옷 입혀놓으면 웨이터, 의사 가운 입히면 의사, <임꺽정>에서 산적 분장하고 가면 “쟤, 정말 산적이냐” 하는 소리 들었거든요. 친구들이 전화해서 늘 촬영하느라 바쁘다는데 대체 어디 나오는 거냐 물었어요. 적어주기도 했죠. 50분짜리 드라마의 45분에서 50분 사이에 나오니 그때는 화장실 가지 마라, 나 지나갈 거다. (웃음) 영화 오디션 볼 때는 제가 나온 짧은 장면을 편집해서 비디오를 제출했고요. 내가 어떤 배우냐, 무슨 길을 갈 거냐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냥 그게 제 길이었어요. 배우는 진열돼 있는 상품이에요. 복숭아 몇개가 있는데 손님이 집으면 팔리는 거고, 아무도 집어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썩어가는 거예요. 그저 매일같이 방송국에 출퇴근하면서 인사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드라마 제작국이란 곳이 좀 편해지긴 했어요. 조감독 형들이 반겨주고 그분들의 SBS 패스 가지고 공짜로 밥 먹고 그런 맛에 간 거죠. 아는 조감독 형이 “나 이번에 단막극 하나 하는데 너 하나 해라” 하거든요. 대본 달라고 하면 대사 없다고 안 줘도 된대요. (웃음) “그래도 미리 분위기 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괜찮대요. 가보면 정말 분위기 파악할 것도 없이 뒤에서 왔다갔다만 해요. 야외촬영 한번 나가면 야외비 10만원에 출연료 바우처를 받아요. 동기들끼리 따먹기하고 한명 몰아주기해서 밥먹고 술마신 추억들이 있죠.

인물의 본질에 들어가는 요소를 찾아서



-<소름>이 최초의 영화입니다. 주인공 직업을 익히느라 강동구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한달 하셨다면서요.

=28일 정도 한 거 같아요. 제가 맡은 인물이 약간 이상 성격이기도 하고 다른 요소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미리 준비할 수는 없는 부분이니까 택시기사라는 직업을 경험해보려고 했죠. 손님을 태우는 신, 회사에서 동료와 있는 모습이 영화에 나왔으니까요.

-배우마다 캐릭터에 진입하는 입구가 있는 것 같은데요. 말투부터 마스터하는 배우도 있고 걸음걸이에서 감을 잡는 배우도 있고요. 김명민씨는 직업인가요?

=인물마다 다르죠. 그 본질에 들어가는 첫 번째 요소를 찾죠. 천재 외과의사고 매회 수술장면이 나온다면 그게 최우선이죠. 수술을 자유자재로 못하면 성격을 표현하려고 해도 액션이 방해해요. 대본은 임박해서 나오는데 수술하면서 대사하고 감정 표현하고 상대배우와 톤 맞추고 감독 디렉션까지 반영하려면 더블액션은 다 어긋나고 엉망되는 거예요. 요컨대,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밥 먹듯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소름> 당시 TV연기자로서 처음 영화를 하면서 서운한 경험이나 적응하기 힘든 상황은 없었습니까?

=지금도 그런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는 영화배우는 배우고 TV연기자는 탤런트로 딱 구분짓는 분들이 많았어요. 영화인들만의 자부심이 강했죠. 감독님이 말씀하실 때도 “진영이(상대역 장진영)는 영화를 많이 해봐서 알겠지만” 하고 서두를 꺼내시곤 했어요. 나중엔 제가 먼저 “감독님, 전 영화를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하면서 말문을 열었죠.

-촬영하거나 출연을 결정했던 몇몇 영화의 제작이 중단됐습니다. <선수 가라사대>와 <빅하우스 닷컴>, 그리고 부상까지 당했던 <스턴트맨>이 있었죠. 그런 사태가 반복되면 배우로서 내가 그 원인 중 일부인가 고민하기도 할 것 같은데요.

=일부가 아니라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턴트맨>은 예산이 60억원이 좀 넘는데 85%나 찍고 중단된 것은 진짜 말이 안되거든요. 15%가 투자되지 않아 완성을 못한다는 건 배우가 메리트가 없기 때문인 거예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제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고 비슷한 소문도 들었어요. 당시 앞서 나온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 유 레디?> <예스터데이>가 줄줄이 실패하면서 투자자들이 발을 빼기도 했지만, 배우가 톱 클래스여서 아깝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을 거예요.

칭찬과 불신 모두 연기에 탄력을 준다



-<불멸의 이순신>를 촬영할 때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늘 지니고 다니면서 읽으셨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인물의 내면적인 톤을 다잡기 위해서였나요? 지금도 기억하는 문장이 있습니까?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심리가 아주 잘 표현돼서 인물을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예컨대 ‘왜군들이 눈보라처럼 몰려오고 있다’는 표현은 상황 묘사이지만 바라보는 장군의 감정이 들어 있는 거죠. 악몽을 꾸는 장면 같은 건 지금도 기억이 나요.

-<불멸의 이순신>은 무려 104회에 이르는 대작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순신은 한결같은 인물이잖아요? 긴 시간 이순신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고통이나 즐거움도 인물의 그것과 궤를 같이했나요?

=50회 즈음 제가 몸에 익은 매너를 겉으로만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가장 깊은 슬럼프에 빠졌어요. 어느 정도 기교가 생기니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불필요한 보통 장면에서는 그냥 암기한 대로 읊는 제 모습이 느껴졌거든요. 토·일요일에 두권의 대본이 나오는데, 저는 월요일 아침 7시부터 새벽까지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서 화요일부터는 배 타는 장면, 야외 장면을 다 찍는 거예요. 월요일에 스케줄을 보면 소화할 분량이 너무 많아 메슥거릴 정도로 온통 순신의 출연분이었어요. 저는 줄곧 앉아 있고, 상대 배역들만 계속 바뀌어 들어오는 거죠. 제 분량이 80% 이상이니까 제가 NG를 내면 하루에 스튜디오 촬영분이 끝나지 않아요. 그때 식도염이 생겼어요. 그런 생활을 몇 개월 하다 보니 관성이 생긴 거죠. 어떤 감정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고, 정말 연기 못한다고 생각해서 무척 괴로웠는데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야, 이젠 너 완전 이순신이야!” 하고 칭찬하는 거예요. 하하. 그러니까 자기가 느끼는 연기의 만족도와 남들의 눈은 완전 다른 거예요.

-<불멸의 이순신> 당시 한 인터뷰에서 ‘갑옷의 무게’라는 말 대신 ‘갑옷의 깊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중에서 제가 계급에 맞춰 여러 종류의 옷을 입었는데 옷마다 실제 무게가 달랐어요. 마침내 수군통제사의 옷을 입었을 때 무게도 가장 무거웠지만 그 이상의 깊이를 느꼈어요. 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의 심적 깊이겠죠. 임진왜란 발발 이후 모든 전투와 거기 따르는 장군의 갈등과 불안이 담겨 있었을 거예요.

-<불멸의 이순신> 제작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테이크 사이에서 NG 때문에 우스운 상황이 발생해도 다른 연기자들과 달리 김명민씨는 활짝 얼굴을 풀지 않더군요.

=으하하 웃고 나서 금세 다시 (무게 잡은 목소리로)“여봐라”가 안되잖아요. 되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연출자가 시간을 충분히 주고 “다 웃으셨어요? 그럼 촬영 들어갑니다” 하는 것도 아니고요. (웃음) 바로 어디서 큐 사인이 나올 줄 모르는 상황에서 경망스럽게 웃다가 톤을 놓쳐서 전 테이크와 어긋나면 큰일이니까요. 그런 여유가 있는 배우가 부럽긴 한데 전 그게 무조건 안돼요.

-앞서 연기의 성패에 자신감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연기자의 자신감은 시청자와 관객의 칭찬에 크게 힘입는 거라고 짐작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연기력을 처음 널리 인정받은 <불멸의 이순신> 이후에 연기 자체가 탄력을 받은 면은 없나요?

=칭찬과 불신, 두 가지 모두 연기에 탄력을 줘요. 남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을 때에도 그 나름대로 에너지를 받아요. <불멸의 이순신> 하기 전에 말 엄청 많았어요. 인터넷 용어로 뭐라더라, ‘웬 듣보잡이 갑자기 나타나 이순신을 한다니 안습이다’라는 말 진짜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무조건 칭찬받는다고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나를 불끈하게 하는 뭔가가 필요하기도 해요. 그래서 전 ‘땜빵’에 신경 안 써요. ‘땜빵’이란 어느 배우가 이 역을 한다고 기사까지 난 다음에 그 사람 대신 제가 연기하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데요. 보통 배우들이 자신이 1순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걸 꺼리거든요. 저는 거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불멸의 이순신> 초기에는 기대가 너무 없어서 외려 편했어요. 더 잃을 게 없잖아요. <불멸의 이순신> 이후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그 다음에도 걱정이 많았어요. 얼마 전만 해도 현대극 조연하던 연기자라 사극이 안 어울리다던 분들이, 이제 쟤는 사극만 어울리니 다음 작품이 큰일이라고 염려했어요. 주변은 언제나 걱정투성이예요. 거기 신경쓰다 보면 아무것도 안돼요.


장준혁은 많은 공감받은 캐릭터



-<불멸의 이순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김명민씨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단한 선동가이고 연설가예요. 웅변, 즉 전형적인 억양의 비현실적이리만큼 잘 짜인 대사는 생경하게 들리잖아요. 그런 대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일단 호소력있는 목소리 덕이 좀 있어요. 둘째는 아무리 마이크 성능이 뛰어나서 조그만 소리까지 잡아낸다 해도 배우가 내 앞에 100명이 있느냐 1천명이 있느냐에 맞춰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께 물어봐요. 이 장면에서 제 앞에 군사를 몇명이나 배치하실 건가요? “지금 조합 배우가 한 500명 왔는데 CG로 1천명을 만들 거다.” 그러면 단상에 올라가서 1천명을 기준으로 발성해요. 지금처럼 기자님 한분한테 말하는 제 톤과 서너명을 상대로 말하는 톤도 다르거든요. 거리도 변수가 되고요. 1천명의 병사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니까 호흡도 더 깊이 발성도 더 최대한 뿜어내겠죠? 맨 뒷줄 병사한테까지 내 목소리가 독려하는 힘이 되어야 하니까요. 뒷줄 병사가 안 들려서 “아, 장군이 지금 뭐래? ”그러면 안되잖아요. (좌중 폭소) 마이크 볼륨도 알아서 조정하겠지만 배우가 마이크에 의존해서 속삭이듯 연설하면 시청자한테도 고스란히 전달돼요.

-지휘자, 단체의 리더 역할을 유난히 자주 맡으십니다. 심지어 드라마 <불량가족>에서 건달인 오달건으로 분했을 때조차 사람들을 모아서 계획을 지시하고 지휘하는 역이었잖아요? (웃음)

=사람들에게 처음 각인된 역할이 리더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순신을 한 여파가 있는 것 같아요. 타고난 제 성격도 조금은 영향이 있고요. 가령 여럿이 모여서 뭘 먹으러 갈까 의논하는 상황이 되면, 두루 물어본 다음에 결국 내 의견대로 하게 돼요. 독단을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통 ‘아무거나’라는 답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결정은 제가 하게 될 때가 많아요.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 막판에 담관암에 걸립니다. 그 설정이 없었더라도, 그가 무너지기를 우리가 실은 바라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그만큼 큰 동정은 안 했겠지만 솔직히 병이 아니었더라도 장준혁에게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부교수 시절부터 장준혁 편을 드는 시청자가 많았어요. 외과 과장이 됐을 때 많이들 좋아하셨고 축하 전화며 꽃다발도 받았어요. (웃음) 시청자가 장준혁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구나 싶어서 매우 기뻤죠. 장 과장은 잘못한 게 없어요. 그를 연기한 전 더더욱 그렇게 생각해요. 답답한 건 그에 반대하는 쪽 사람들이죠.

-법정장면이 기억나는군요. 후배 의사 염동일이 증언을 번복하는 순간 장준혁의 표정은 충격이나 반성의 빛을 띠는 게 아니라 ‘뭐 저런 어리석은 것이!’ 하는 투였어요. (웃음)

=(진지하게) 아마 염동일이나 최도영처럼 살라면 답답해서 죽을 거예요. 가족들도 고생할 거고요.

-확고하시네요. (웃음) 전문가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까 광역수사대 형사들과 수사권 문제도 이야기하고 의사들과 새로 나온 수술법을 논한 경험도 있다고 읽었습니다. 전문가 세계에 잠깐 발목까지 담그고 나오는 기분이 어떤가요?

=배우의 굉장한 특권이죠. 공부와 독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상식과 지식이 늘고 조금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우습지만, 예컨대 의료분쟁 생기면 의사 편에 마음이 가요. 누가 병원엘 갔는데 3시간 기다려서 몇분 진찰 못 받았다고 불평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돌팔이한테 가. 명의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한명한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너한테 필요한 게 위로야, 완치야?”라고 막 흥분해서 말했죠. (웃음)

인위적이라는 반대 무릅쓰고 강마에 외모 설정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김명민씨의 연기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연기를 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한국에 없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베토벤 바이러스>의 대본을 받아들고는 당황했어요. 다른 캐릭터는 현실적인데 강마에 대사는 전부 다 아주 비현실적이고 만화에 나오는 말들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외화 생각이 났어요. 특히 <아마데우스> <불멸의 연인> 같은 음악영화,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를 그린 서양 역사극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강마에랑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솔직히 답습했어요. 외화는 다른 문화권 캐릭터니까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강마에는 한국 캐릭터니 거부감은 있을 수 있겠다 각오했죠.

-전작인 <하얀 거탑>의 장준혁 같은 카리스마형 캐릭터인 만큼 차별화도 고민이 되셨겠죠. 눈썹, 헤어스타일, 더블 버튼 정장 등 분장과 의상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신 건가요?

=남자배우는 외모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아요. 헤어스타일이 고작이죠. 그런데 제가 본 고집스러운 지휘자들은 눈썹이 다 올라갔더라고요? 그래서 인위적이라는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작위적으로 만드는 것,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라고 했죠. 아이로니컬하게도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니 음악하시는 분들이 “우리 지휘자 선생님하고 아주 똑같아요.” 그러는 거예요. (웃음)

-정말 강마에는 외화 더빙하듯 대사를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톤이 성우들의 외화 더빙과 비슷했다면 발성은 입천장을 혀 뒤쪽으로 막은 듯한 소리였는데요. 드라마 내내 그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작위적 느낌을 극복할 자신이 있었나요?

=<베토벤 바이러스>를 어쩌다 한번 보시는 분들은“지금 뭐하는 거야? 어색하게 왜 저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보통 지휘자들이 악기를 공부한 분도 있고 성악을 한 분도 있어요. 강마에는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한 사람이지만 전 거기 성악을 접목했어요. 성악을 한 사람은 말을 해도 조금 ‘오버스러운’ 게 있거든요. 장준혁이 지금 저와 같은 톤으로 이야기한다면 성악하는 분은 일상적인 말도 항상 배에 힘을 주고 말해요. (별안간 강마에 음성으로) “아, 그러세요? 그럼 제가 내일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죠. (좌중 경탄) 또 하나는 대사 스피드예요. 미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대사가 빨라서예요. 같은 길이의 한국 드라마보다 대본이 훨씬 두껍죠. 저는 대사를 지나치게 여유롭게 내뱉는 방식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 빠르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는 대본은 늦게 나오고 긴 대사는 꼬여서 설정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캐릭터를 바꿀 순 없었죠. (웃음)

-강마에라는 인물은 포디엄에 올라가 단원들을 내려다보면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부작용이 있어요. 언젠가 100여명의 팬이 촬영장을 방문했는데 제가 자연스럽게 단상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서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좌중 폭소)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서 다시 내려왔어요. 사실 그런 장면은 배우들이 부담을 가져요. 다들 앉아 있고 혼자 떠드니 NG가 났을 때 몹시 창피하거든요.

배우는 아는 것이 많아야



-어려서부터 연기했지만, 그래도 배우로서 결정적인 문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남의 눈을 의식하기를 그만두고 몰입할 수 있게 됐습니까?

=자신감이 생겨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내가 하려는 것, 내 안에 있는 것만 생각나요. 반면 불안하면 온갖 것이 보이고 신경이 쓰이죠. 그게 보는 사람 눈에 바로 티가 나요. 내 귀에 내 대사가 들리면 잘못된 거예요. 내 입으로 말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몰라야 제대로 된 거예요. 내 귀엔 상대방 대사만 들려야 해요.

-분류한다면 역할 속에 들어가 자기를 지워버리는 유형의 배우입니다.그러나 카멜레온이 되는 것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잖아요? 내가 지닌 몸의 육체적 한계가 있고, 내 안에 역할과 공명할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도 한계 지점이 있을 테고요.

=한계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극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죠. 대본을 보면 어미도 이상하고 내 입에 너무나 안 맞을 때가 있는데 전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그대로 해요. 만약 그 대사를 제 입에 맞게 바꾸면 김명민이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미 제가 해왔던 것이란 뜻이니까요. 작가가 대사를 썼을 때는 어미 하나나 조사 하나에 의도가 있는 거예요. 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다 외워요. 그러다 보면 김명민이 아닌 그 인물의 성격이 어느새 만들어져요.

-메소드 연기는 캐릭터에 부합하는 정서적 기억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자기 안에서 역할과 연관된 감정을 찾는 작업과 역할을 자기가 아는 감정에 맞추는 건 다르겠지요?

=완전히 다르죠. 솔직히 저도 얼마 전까지는 눈물 흘리는 신이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일을 상상한다거나 예전의 슬펐던 일을 상기한다거나 하면서 눈물을 만들어냈는데, 그렇게 하니까 제가 어떤 역을 하건 우는 신은 눈물의 질감이 똑같아져요. 그게 아니라 강마에가 운다면 어떻게 울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죠. 눈물이 고일까, 티내지 않으려고 애쓸까 상황에 맞추니까 예전보다 쉬워졌어요.

-좋아하는 배우로 로버트 드 니로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드 니로의 연기가 항상 최고는 아닌데, 어느 시기 드 니로를 말씀하신 건가요?

=<성난 황소> <택시 드라이버>의 드 니로죠. 뭐, <히트>도 좋았어요. 드 니로는 가진 역량이 넘치는 배우인데 사생활은 좀 복잡하죠. 명배우들이 그런 것이 좀 있어요. 훌륭한 배우는 마치 반드시 사생활이 복잡해야 하는 것처럼. 근데, 전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요.

-삶을 방기하면서까지 연기의 에너지를 얻고 싶진 않다는 말씀이군요.

=예전에 “넌 너무 고지식해서 문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연예인들끼리 어울려 술 마시는 시간이 솔직히 참 아까워요. 그저 술, 남는 건 속쓰림인데 그 시간에 책 한자, 영화를 한편 더 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도움이 안되는 걸 알지만 즐거워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웃음)

=물론 저도 그럴 때가 없진 않아요. 그런데 그런 생활이야말로 마치 진짜 배우의 삶인 양 보는 시선엔 동의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기억이 하나 있어요. 중학생 때 저는 나대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 몰고 다니며 놀기를 즐겼거든요. 오프라인(무대 밖)의 끼였죠. 그런데 학교 연극반에 너무나 조용하고 침착하고 항상 책 보고 글을 쓰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애와 같이 연극을 하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그 애 안의 에너지는 장난이 아니었던 거죠. 그때 충격을 받고 지금껏 명심하는 것이, 오프라인에서의 끼와 온라인(무대 위)의 끼는 다르다는 거예요. 잘 놀고 말재간 있으면서 연기 잘하는 이도 있지만 놀기만 잘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거든요. 그리고 배우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追伸 비대칭으로 일그러지는 입술, 날카로운 삼백안, 눈을 치뜨면 11자를 그리는 이맛살. 김명민의 얼굴에는 냉소가 썩 잘 어울린다. 선뜻 기뻐하지도 쉽게 낙망하지도 않을 사람 같다고 짐작하자, 김명민이 끄덕인다.“ 매니저들이 즐거운 일이 있어서 좋아하면 진정하라고 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예상했던 거 아니냐고 해요. 시니컬하다고 소문이 났죠.”방영 중인 드라마가 호의적 반응을 얻는 경우라 해도 작업하는 동안은 행복을 느끼는 일이 드물다는 이 배우가 느끼는 충족감은 “걱정한 것보다는 괜찮다”가 고작이다. 그는 좋은 연기를 위해 무척 안달하면서도 실패의 상상에 진저리치지 않는다.“항상 저라고 잘되란 법 있나요?” 단역 연기가 일의 전부였던 지루했던 시기를 “달걀로 바위 치는 시간”이었다고 묘사하면서 당시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하여 깨지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잘라 말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색을 들여다보았지만 비꼬는 기색은 없었다. 거기에는, 결국 인생은 대단히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더분한 냉소가 있을 뿐이었다.

(글) 김혜리 vermeer@cine21.com

(사진) 손홍주 lightson@cine21.com
Posted by ican2727
[예병일의 경제노트] 관중석이 아니라 경기장에 뛰어들어 도전하라... 테어도르 루즈벨트

실수가 두려워 주저하며 실행하지 않아서, 도전하지 못해서 훗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8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덮친 지진. 많은 도로가 파괴됐습니다.
그 중 베이 브리지는 24시간 복구작업이 진행되어 6주만에 재개통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간선도로와 나들목 등은 지진 발행 후 1년 반 동안 전혀 복구되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복구방법을 놓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제때 일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샌프란시스코 지역경제의 커다란 손실로 이어졌습니다.

기업이나 개인도 비슷합니다. 실수가, 실패가 두려워 주저하고만 있다가 '시기'를 놓치곤 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승리나 패배도 모르는 소극적인 사람.
다른 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만 하는 소심한 영혼.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적을 만들거나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것만 피하려는 무기력한 사람...


이들은 우리가 희망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테어도르 루스벨트의 표현 처럼,

우리는 다른 이의 실수를 찾아내 지적하기만 하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관중석'이 아니라 실제 '경기장'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열정과 헌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 뒤늦게라도 마침내 목표를 달성해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과감히 도전했다 실패한 이는 아쉽기는 하겠지만, 분명 실수가 두려워 아무 것도 시도해보지 못해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그런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겁니다.


이들이 우리가 희망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Posted by ican2727
[중앙일보 이여영.이정권]
당신은 보험사 영업사원이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보험 상품을 단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간 곳에서 맞닥뜨린 사람이 하필이면 당신을 첫사랑으로 여기는 옛 남자 친구다. 과연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절박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운 얘기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닥친다. 점심시간인데 결론도 나지 않는 회의를 질질 끄는 상급자에게 빨리 자리를 정리하자고 말하고 싶다. 상사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직장 생활은 이런 순간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도 핀잔을 듣는다. 반면 하고 싶은 얘기는 다하면서도 칭찬을 듣는 이도 있다. 단지 재능 탓일까. 아니면 직업적인 훈련의 결과일까.

우리 사회에는 유독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하는 직업군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 즉 ‘대화의 달인’이라면 힌트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보기관의 공작 담당관들이 좋은 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상대방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어야 한다. 그럴 때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전직 정보요원의 제안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염돈재(65)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40년 가까이 국가정보원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해 왔다. 2004년 1차장을 끝으로 현업에서 물러나, 지금은 산업보안을 가르치고 있다.

온화하지만 신중한 인상의 염 교수는 한사코 구체적인 답을 꺼렸다. 대신 뜬금없이 지난해 개봉했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로버트 드니로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굿 셰퍼드(good shepherd)’다. 미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CIA)의 탄생에서부터 쿠바 침공까지를 그린 본격 첩보물이다.

이 영화에서 명문대 학생이었던 맷 데이먼은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로부터 친독일 성향의 지도교수를 감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때 수사국 관계자가 망설이는 주인공에게 했던 말이 가장 좋은 예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주셔야죠”였다. 말하자면 위험한 임무에 대해 공익에 입각한 명분을 만들어 주라는 지적이었다.

<직장에서 1> 직장인의 경우 염 교수가 말한 ‘공익’이라는 부분을 회사의 이익으로 변형해 활용할 수 있다.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순수한 것인지를 설명하지 말고 회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모든 행동이 결과로 평가되는 직장생활에서 좋은 의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곤란한 부탁을 할 때는 “이 회사의 부장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라는 식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싶을 때에는 “김 대리의 저런 행동은 회사의 이미지에 치명적일 텐데요” 정도가 좋겠다.

기획안을 내놓을 때도 마찬가지다. “제가 이런 일을 해보고 싶은데요”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가 더 확실하다. 염 교수에게 더욱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해 보았다. 가령 어떤 종교인을 적지에 파견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저라면 종교적 신념을 위해 어디까지 선교하러 갈 수 있는지를 먼저 물을 것 같아요. 위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란 답이 나오면, 그때는 얘기가 술술 풀리겠죠.”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목적지로 떠나는 것이 종교인으로서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설득하는 데 주력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제안이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전략이다. 염 교수는 “오랜 경험을 통해 볼 때 공익적인 명분을 제공하거나 ‘윈-윈’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장에서 2> 이 부분은 휴일 당직 근무나 야근, 외근 스케줄을 바꾸고자 하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조언이다. 상대가 곤란해 할 만한 도움을 청할 때에 적당하다. 보통 직장인들은 이럴 때 예전에 자신이 베풀었던 도움과 친절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낸다. 그러면 상대는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회피할 방법을 찾게 된다.

“이 차장, 내가 저번 달에 휴일근무 대신해줬잖아”라고 말을 시작하지 말고 “이번 주말에 사장님 내외분이 회사에 오신다는데 눈도장 찍을 좋은 기회가 될 거야”라고 하면 된다. 상대방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익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가 된다.

#암 전문의사의 충고

그렇다면 도저히 명분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납득시키기도 어렵다면. 환자에게 암 발병 사실을 알려야 하는 의사를 생각해보자.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다.

국립암센터 원장을 지낸 박재갑(60) 서울의대 외과학 교수는 지금도 늘 암환자를 마주한다. 외래 진료시에는 하루에도 70~80명을 만날 정도다. 대부분이 1, 2차 진료 과정을 거쳐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을 찾아온다. 그런 만큼 환자에게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얘기해줘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론이다. 왜 그럴까. 환자 스스로가 암 여부에 대해 의심을 품은 채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많은 경우, 또는 가족이 암 통보에 반대하는 경우다. 대신 그는 가능하면 상황을 희망적으로 얘기한다. 반면 요즘 젊은 의사들은 지나치게 통계에 치우쳐 환자에게 겁을 주는 경향이 있다.

박 교수는 “희망을 가져야 힘든 치료 과정을 더 잘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의사들로서는 생과 사에 대해 함부로 속단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의사의 영역을 벗어난다. “암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소극적으로 얘기하는 방법도 있지요. 환자가 받을 충격 때문에 가족들이 통보를 반대할 경우에는 ‘거기가 좀 막혀서 수술을 해야겠네요’라고 하기도 하죠. 생존율을 위해서라도 과장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좋은 쪽으로 이야기합니다.”

<직장에서 3> 희망적인 얘기는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희망적인 얘기로 상대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감정을 움직이면 상대는 당신의 설득이나 말을 훨씬 잘 받아들이게 된다. 상사 대신 들어간 간부회의에 대한 보고를 할 때 “회장님께서 이번 프로젝트가 마음에 안 드신답니다”가 아니라 “회장님께서 다음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가 크시답니다”가 효과적이다. 전체 상황 중 가장 희망적인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기만 하면 된다.

#베테랑 형사의 수완

논리가 안 통할 때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위력은 기대 이상이다. 지난달 우예슬·이혜진 양 납치살인사건 용의자 정모씨의 자백을 받아낸 경찰청 범죄정보지원계 권일용(42) 경위가 그랬다. 정씨는 첫 대면부터 막무가내로 살해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자 권 경위는 인내심을 갖고 얘기를 들어주는 쪽을 택했다. 이런 식의 교감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의 편이 돼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앞뒤가 안 맞는 결정적인 대목에 대해 공박했다. 그것으로 정씨는 무너지고 말았다. 권 경위는 “용의자들을 대할 때, 비언어적 요소나 문화적인 접근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 3초 이내에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면을 고려해 대처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권한다.

<직장에서 4>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쏘아붙이기만 하는 상사를 대할 때 논리적 반박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옳지 않은 일도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상사와의 다툼과 논쟁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찬찬히 생각해본다. 하급자로서 혹시 윗사람보다 잘나 보였던 것은 아닌지, 상사에게 개인적인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저는 죽어도 그 일은 못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잠깐 나가서 차 한잔 하시죠. 오늘은 제가 살게요”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 언급한 상황에서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사랑에게는 실직 당한 자신의 남편에 대한 사연부터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경계심을 풀고 심리적 무장을 풀게 된다. 반면 배고파 하는 상사에게는 점심 시간이 다 됐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든 어려운 얘기를 꺼내야 할 때는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이야기도, 웃으면서 건네는 부류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여영 기자 , 일러스트 = 이정권 기자

명분을 이해시켜라

대화는 설득의 게임이다. 당신의 좋은 의도를 설명하기보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줘라. 명분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떤 자기합리화를 해서라도 당신의 말을 이해하려 들 것이다. ‘회사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는 명분이 가장 잘 통한다.

이익에 호소하라

서로 ‘윈-윈’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시켜라. 특히 도움을 청할 때는, 우정이 아닌 이익에 호소해야 한다. “당신이 도와준 은혜를 절대 잊지않을게”가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에 동참한 직원들에게 연봉 인상의 기회가 주어질 거야”라고 하는 게 효과적이다.

사람이 우선이다

논리가 안 통할 때는 인간적으로 접근하라. 상대가 늘 당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극적으로 구해주면 그가 당신에게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적 접근을 시도할 때에는 합리적인 사고를 잠시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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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서프라이즈 조은아 기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13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 성금을 모금해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나선 것에 대해 “숭례문이 무슨 불우이웃이냐”라며 날선 반기를 들었다.

▲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자료사진) ⓒ 데일리서프라이즈 

진 교수는 이날 오전 PBC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사고는 자기가 치고 재미도 자기가 보고 돈은 왜 우리가 내느냐는 것이 국민들 정서”라며 “아마 이 때문에 누리꾼들이 이명박 당선인의 ‘2MB’, 즉 2메가바이트라고 부르나보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일부 언론들과 시민단체들이 이미 성금모금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도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진 교수는 “예산범위 밖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하는 게 성금”이라면서 “성금을 모금하는 건 사태를 호도하는 것이다. (복원은) 국민들이 낸 세금 내에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MB, 모금운동 발의로 복원의 공까지 챙기자는 것”

이어 진중권 교수는 “당장 급한 건 타지 않은 문화재들”이라며 이명박 당선자를 겨냥, “책임 있는 정치가라면 낯간지러운 모금 운동을 할 때가 아니라 그 어떤 방화에도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당선자가)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들여다보인다. ‘불타 버린 국보 1호,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다시 서다’라는 게 감동적인 드라마고 그(복원된 숭례문) 앞에서 활짝 웃으면서 사진 찍을 것이며 모금운동도 자기가 발의했으니까 복원의 공까지 자기가 챙기자는 것”이라며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게 잘 통할까 싶다”고 비꼬았다.

인터뷰 중 진 교수는 숭례문 화재사건이 발생 다음날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노무현 대통령이 봉화마을에 가진 관심의 10분의 1만 있었어도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한 것과 관련, “나경원 대변인이 참새 아이큐의 10분의 1만 가졌어도 대통령 사저와 숭례문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책임을 정확하게 물어야 되는데 내가 보기에 대책 없이 개방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지금 숭례문 관리책임 맡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 그리고 문화재 전반에 보존책임 맡은 유홍준 문화재청장 세 사람”이라면서 “세 사람 중에 한 분은 사직서를 냈고 또 한 사람은 사과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지금 모금운동 하고 있다”고 이 당선자측을 힐난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충분한 대비책 및 관리책 없이 숭례문을 개방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진 교수는 “사고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중대한 원인임엔 틀림없다”면서 “왜 대책도 없이 서둘러 개방부터 했느냐는 것이 문제인데 내 생각에는 (당선자의) 개인적인 야심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숭례문 복원을 두고 교훈적인 의미로 전소된 채 그대로 놔두자는 의견과 최대한 설계도면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에 대해 진 교수는 “물론 교훈적인 의미로 파괴된 대로 그대로 두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전소된 남대문이 주는 교훈이라는 건 대통령이라도 문화재를 대책 없이 개방하면 이 꼴 난다는 것인데 그걸 무슨 공공의 집단적 기업으로 거리에 세워둘 가치까지 있어 보이진 않다”며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계천 주변 유적들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아울러 그는 “숭례문은 그나마 파괴된 게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만 보이지 않고 파괴되는 유적들이 많다”며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추진했던 청계천 사업과 현재 추진 중인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 역시 비난을 퍼부었다.

진 교수는 “청계천 사업은 외국에서라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사업”이라며 “문화 복원도 아니고 생태 복원도 아닌 그냥 커다랗게 콘크리트를 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청계천 주변 유적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고 강조한 뒤 “그런 걸 지금 업적이라고 하는 이 사회의 문화적인 천박함도 지금 이번 사고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진중권 교수는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주위의 유적지들, 생태계들, 불도저에 다 망가진다”고 지적한 뒤, 이명박 당선자가 “두바이는 사막에 운하를 판다”며 대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에 대해 “금수강산과 황량한 사막의 차이를 구별 못하는 것이다. (이 당선자의 눈에) 대한민국 금수강산이 온통 사우디 사막의 공사판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질타했다.

 

 

평화방송 진중권 방송 다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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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 - 사랑가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다 덥쑥 빠져 먹든 못허고, 으르르르르르르렁 어헝 넘노난듯,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 속을 넘노난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으 넘노난듯,
구곡 청학이 난초를 물고 세류간의 넘노난듯,
내 사랑 내 알뜰 내 간간이지야, 오호 둥둥 니가 내 사랑이지야.
목락무변수여천의 창해같이 깊은 사랑,
삼오신정 달 밝은듸 무산천봉 완월사랑,
생전 사랑이 이러허니 사후기약이 없을소냐!
너는 죽어 꽃이되되 벽도홍삼춘화 가 되고,
나도 죽어 범나비 되되,춘삼월 호시절에 니 꽃송이를
내가 덥쑥, 안고 너울너울 춤추거드면 니가 날인줄 알려므나.
화로허면 접불래라 나비 새 꽃 찾어간즉, 꽃되기는 내사싫소.
그러면 죽어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로 인경이 되고,
나도 죽어 인경 마치가 되여, 밤이면 이십팔수, 낮이면 삼십삼천
그저 댕 치거드며는 니가 날인줄 알려므나.
인경되기도 내사싫소.그러면 죽어 될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가 되되,
따 지, 따 곤, 그늘 음, 아내 처, 계집 녀,자 글자가 되고,

나도 죽어 글자가 되되,
하늘 천, 하늘 건, 날 일, 볕 양 지아비 부, 기특 기,

사내 남, 아들 자,자 글자가 되여
계집 여변에가 똑같이 붙어서서 좋을 호자로만 놀아보자 .


아니리

얘, 춘향아. 우리 한번 업고 놀자.
아이고, 부끄러워서 어찌 업고 논단 말이요?
건넌방 어머니가 알면 어떻게 허실라고 그러시오?
너으 어머니는 소시 때 이보다 훨씬 더 했다고 허드라.
잔말 말고 업고 놀자.

중중머리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 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르 부어,
씰랑 발라 버리고, 붉은 점 웁벅 떠 반간 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당동지지루지허니
외가지 당참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니 무엇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 사탕으 혜화당을 주랴?
아매도 내 사랑아.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을래?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아매도 내 사랑아.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매도 내사랑아.

아니리

이 애 춘향아 나도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날 좀 업어다오,
도련님은 나를 개벼워서 업었지만,
나는 도련님을 무거워서 어찌 업고 논단 말이요?
내가 널더러 무겁게 업어 달라드냐?
내 양팔을 니 등 위에 얹고, 징검징검 걸어다니면
다 그 안에 좋은 수가 있느니라.
춘향이가 이제는 파급이 되어 도련님을 낭군자로 업고 노는듸.

중중머리

둥둥둥 내 낭군. 어허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 나~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 호,
소상동정 칠백리 일생으 보아도 좋을 호로구나.
둥둥둥 어허 둥둥 어허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 애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허니 정자 노래를 들어라.
담담장강수 유유원객정 하교불상송허니,
강수의 원함정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기으송아정,
하염태수의 희유정 삼태육경으 백관조정.
주어 인정 복 없어 방정. 일정 실정을 논정허면,

니 마음 일편단정. 내 마음 원형이정.
양인심정 탁정타가, 만일 파정이 되거드면

복통절정 걱정되니, 진정으로 완정허잔 그 정자노래라

Posted by ican2727
 TAG 국악,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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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can2727
지난달 9일, 입대 후 백일 만에 휴가를 얻어 서울 보광동 집에 온 이준호(21)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입대할 때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대문 밖에서 손 흔들던 할머니(김정숙씨·85)가 어둡고 차디찬 방바닥에 홀로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열이 펄펄 끓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준호씨는 그길로 입대 전 아르바이트했던 일식집으로 달려가 이틀을 일했다. 3일째엔 막노동판으로 향했다. 그렇게 15만원을 벌어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갔다. 영양실조와 감기몸살 진단을 내린 의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냐”고 혀를 찼다. 휴가 마지막 날 밀린 가스비를 내고 남은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준 준호씨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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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할머니만 남겨두고 입대했던 이준호 이병이 지난 20일 소속 부대의 배려로 특별외출을 나와 서울 보광동 월셋방에서 할머니를 돌봐드리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com


준호씨는 고교 때부터 가장역할을 했다. 엄마는 준호씨가 9살 때 이혼한 뒤 소식이 끊겼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3년 전쯤 집을 나갔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밤 12시까지 청소를 한 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돌렸다.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일식집에서 하루 12시간씩 음식을 날랐다. 2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준호씨는 119의 도움을 받아 인근 병원에서 혼자 상을 치렀다. 그는 “할아버지께 외식 한번 못 시켜드린 게 가슴 아파 그때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돼 군에 입대하게 된 준호씨는 홀로 남을 할머니를 위해 몇 달간 한푼도 안 쓰고 모은 300만원을 입대하는 날 건넸다. 그 돈을 소식도 없던 아버지가 찾아와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할머니가 난방이 끊긴 방에서 자다 앓아 누운 것이었다.

훈련소에서 훈련 받는 동안에도 그는 할머니 걱정으로 몰래 울다 동기들에게 들켜 놀림을 받기도 했다. 백일휴가를 마친 뒤 ‘나 없는 새 돌아가시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더 심해진 준호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이 소속된 1포병여단 예하 쌍호부대(경기도 파주시) 생활관 분대장을 찾아가 *을 털어놨다. 본부 행정보급관 박종건 상사는 “궂은 일 도맡아 하고 예의바른 준호에게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랐다”고 말했다.

상황이 알려지자 부대 전체가 준호씨를 돕는 데 적극 나섰다. 대대장의 지시로 박 상사와 무선반장은 준호씨 집을 찾아가 할머니를 보살폈고, 아버지 주민등록을 말소해 할머니에게 매월 15만원의 정부보조금이 지급되도록 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만나 할머니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도 했다. 지난 20일에는 부대의 배려로 준호씨가 특별외출을 나와 할머니를 몇 시간이나마 돌볼 수도 있었다.

같은 부대 350명의 장병들이 월급을 쪼개 150만원을 모금해 줬지만, 준호씨가 제대할 때까지 할머니의 월세와 생활비로는 부족했다. 그러다 박 상사가 조선일보·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벌이는 ‘우리이웃―62일간의 행복나눔’ 기사를 보고 사연을 적어 보냈다. 이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담당 사회복지사와 연계해 20개월간 월세·생활비 등 총 840여만원을 할머니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준호씨는 예전에는 남의 도움 받는 것이 싫어 학교 선생님이 용돈을 챙겨줘도 받지 않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제가 어려울 때 받은 사랑을 나중에 더 어려운 이들에게 보답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현재 부대에서는 의가사제대(依家事除隊) 등 준호씨를 위한 조치를 강구 중이지만, 준호씨는 되도록 만기 제대를 할 생각이다. “병역의무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언제 제대를 하든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군생활을 할 거예요.” 준호씨는 “일식요리를 밑바닥부터 착실히 배워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우리이웃―62일간의 행복나눔’은 12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총 4억5000만원을 지원한다. 문의 (02)6262-3162. 후원계좌 국민은행 432101-01-268333(예금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Posted by ican2727
이만수는 대단한 프로야구 선수였다.
이만수는 영어도 모르면서 미국에 건너갔고,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를 거쳐서 지금은 SK 코치로 올해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가 시즌 중 매일 기억해 둘 점들을 컴퓨터에 정리한 일기는 749쪽에 달하고, 수첩에 정리한 내용만 여섯 권이다.
'참 바보스럽게 성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 줄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죽기 살기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보스럽고, 끈질기게, 그리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과 제대로 하는 것, 최고로 일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오늘 면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입맛에 맞는 친구가 과연 있을까?

from. peter
Posted by ican2727
 TAG 성실, 이만수

일단, 감상 하시고 ~



넓은 배포와 진정으로 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남자라 보통 말하는 나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인순이 님... 부디 오래동안 저희와 함께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참에 AnyBGM 에서 BGM 도 구입했다는~~ :-)

가사 나갑니다..



거위의 꿈
작사 이적/작곡 김동률/노래 인순이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지쳐 남루하여도
내 가슴깊숙히 보물과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해요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해요

 
Posted by ican2727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해 10월 이승엽(31)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 3년째를 맞아 이승엽은 타율 3할2푼3리·41홈런·108타점이라는 가공할 만한 활약으로 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할지 아니면 일본에 잔류할지를 놓고 온갖 설이 난무한 가운데 이승엽의 최종 선택은 요미우리 잔류였다. 이와 함께 한 가지 바람도 덧붙였다. “하라 감독을 반드시 도쿄돔에서 직접 헹가래쳐 주고 싶다”.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10월 2일. 이승엽은 바람대로 도쿄돔에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었다.

▲ 하라 감독의 특별한 믿음
이승엽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지바 롯데를 떠나 전격적으로 요미우리 입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인의 무덤’이나 다름없었던 요미우리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비관적인 시선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개막전부터 요미우리의 제70대 4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해 마칠 때까지 4번 자리를 지켰다. 시즌 전만 하더라도 이승엽의 4번 낙점은 분명 의외의 결정이었다. 2005년 지바 롯데에서 30홈런을 쳤지만 끝내 플래툰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3년 만에 요미우리 사령탑으로 복귀한 하라 감독의 믿음과 배려도 크게 작용했다.

하라 감독이 이승엽을 믿고 지지한 것은 궁극적으로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승엽의 성적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4번 타자로서 위압감도 컸다. 하지만 실력만큼이나 높이 평가된 것이 바로 야구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책임감이었다. 지난해 요미우리는 주축 선수들이 차례로 줄부상을 당해 전력에 큰 차질을 빚었지만 이승엽은 3경기밖에 결장하지 않았다. 특히 6월 7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왼손가락을 다쳐 다음날 결장했으나 이튿날 경기에 복귀해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하라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하라 감독은 올 스프링캠프에서 에이스 우에하라 고지를 비롯해 10여 명에 달하는 주축 선수들이 이런저런 부상으로 훈련에 차질을 빚자 격노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승엽은 묵묵히 훈련에 임했다. 올초 모친상을 당해 무릎 수술 후유증 극복에 제동이 걸렸지만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친상으로 부족했던 훈련량을 보충하는 데 힘을 썼고, 이는 자연스레 믿음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승엽에게도 하라 감독은 반드시 보은을 해야 할 ‘귀인’이었다. 2005년 136경기에서 125개의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온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 코드가 맞지 않아 남몰래 마음고생을 한 이승엽에게는 더욱 그랬다.

▲ 부상과 부담 그리고 부진
그러나 2007시즌은 이승엽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겨우내 수술 받은 왼쪽 무릎 여파로 하체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몸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개막전부터 고질적인 왼쪽 어깨 통증이 밀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월말부터는 왼쪽 엄지에 울림 증상이 찾아왔다. 이승엽은 그동안 부상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무릎에다 통뼈를 갖고 있다. 대구구장의 딱딱한 인조잔디에서도 이렇다 할 부상이 없었다. 그만큼 부상에 대한 대처 방법이 더욱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하라 감독의 운명이 걸린 2007시즌 한꺼번에 찾아온 부상이라 더욱 야속했다.

부상 못지않게 심적인 부담도 컸다. 요미우리 4번 타자라는 부담감도 컸지만 일본 프로야구 최고 연봉선수(6억 5000만 엔)라는 부담감이 이승엽을 옭아맸다. 초대형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에게는 첫 해가 중요하다. 첫 해 몸값을 하지 못하면 곧바로 ‘먹튀’라는 안 좋은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몸이 성하지 않은데 심적인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타석에서 투수를 압도하는 위압감도 사라졌다.

그때마다 하라 감독은 “누가 뭐래도 거인의 4번은 승짱”이라며 주눅든 이승엽의 사기를 북돋아줬다. 덕아웃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좌절하는 모습으로 비쳐지자 고개를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과 부담이라는 그늘은 이승엽을 덮어버렸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하라 감독으로서도 언제까지 무기력한 4번 타자를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6월 9일 라쿠텐전에서 이승엽을 처음으로 4번 타순에서 제외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하라 감독은 경기 후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한 결정”이라며 “승짱이 4번으로 복귀할 때 진짜 자이언츠가 된다”고 따뜻한 배려를 했다. 그렇다고 이승엽에게 채찍을 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승엽의 부진이 계속되자 “부진이 너무 길다”, “4번 타자답지 않은 플레이”라며 따끔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하라 감독이다.

▲ 극적인 복귀, 극적인 보은
이승엽은 7월12일 2군행을 자처했다. 성적도 안 좋았지만, 무엇보다 부상당한 엄지 통증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상태는 생각보다 더 안 좋았고 수술을 고려할 정도였다. 수술을 하면 시즌을 접어야 했다. 완치를 위해서라면 수술을 서둘러야 했지만 이승엽의 책임감이 다시 한 번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라 감독이 이승엽에게 부상을 안고서라도 시즌을 마쳐줄 것을 부탁했다. 이승엽은 수술을 시즌 뒤로 미루고 시즌을 강행하기로 결심했다. 극적인 복귀였다. 하라 감독 역시 김기태 육성군 코치를 이승엽의 1군 복귀 일에 맞춰 함께 1군으로 올리면서 이승엽이 보다 심적인 안정감을 갖도록 배려했다.

이승엽은 후반기 시작과 함께 1군에 복귀해 첫 6연전에서 4홈런을 터뜨리며 부활을 알렸다. 타순은 4번이 아닌 5번이었지만 이 역시 하라 감독의 배려였다. 이에 보답하듯 이승엽도 하라 감독의 지시에 따라 희생번트까지 감행할 정도로 자존심을 버렸다. 철저히 하라 감독과 우승을 위해 자신을 팀에 용해시켰다. 게다가 8월 중순부터는 엄지에 착용한 충격흡수용 고무 보호대까지 벗어던졌다. 타격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보호대를 떼어버린 것이다. 마운드의 집단 붕괴로 팀이 한창 어려울 때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팀의 단결력을 고취시키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요미우리는 시즌 중반까지 보여준 투타 밸런스를 잃어버린 채 주니치와 한신으로부터 맹추격을 받더니 한때나마 센트럴리그 3위로까지 추락했다. 9월 7일 한신을 상대로 일본 진출 첫 한 경기 3홈런의 맹폭을 퍼부은 이승엽은 9월 9일부터 37일 만에 4번 타자로 복귀했지만 이날 경기에서 한신의 외국인선수 앤디 시츠의 고의적인 플레이로 왼쪽 발목을 짓밟히는 고초까지 겪었다. 하지만 신사로 소문난 하라 감독이 눈에 불을 켜고 발목테러를 당한 이승엽을 보호했고 선수단도 다시 한 번 단결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 후 요미우리는 8승4패를 거두며 센트럴리그 1위 자리를 탈환했다.

하라 감독과 이승엽의 결정판은 9월말부터였다. 4번 타자 복귀 후 극도의 부진을 보인 이승엽은 9월 22~23일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 6연타석 삼진이라는 고개를 들 수 없는 불명예를 당했다. 하지만 23일 요코하마전에서 0-2로 뒤진 8회말 1사 만루에서 결승 3타점 3루타를 작렬시켰다. “승짱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며 감격한 하라 감독의 무모하리만큼의 믿음이 기어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기세는 9월24~26일 주니치와의 실질적인 ‘리그 우승 결정전’까지 이어졌다. 첫 경기부터 팀은 패했지만 이승엽은 홈런 하나 포함 4타수 3안타로 맹타를 휘둘렀고, 3연전 마지막이었던 26일 경기에서 결정적인 동점 솔로포로 역전승에 발판을 놓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라 감독의 진득하고 질긴 믿음이 만들어낸 꽃보다 아름다운 결과였다.

이승엽은 센트럴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지난 2일 야쿠르트와의 홈경기에서 4회 동점 투런포를 터뜨리며 3년 연속 30홈런의 위업과 함께 다시 한 번 역전승에 디딤돌을 놓았다. 추정 비거리가 140~150m에 달하는 초대형 우월 홈런으로 타격 컨디션이 완벽하게 회복됐음을 알리는 아치였다. 이승엽은 9회말에도 볼넷으로 출루해 동점 득점에 성공하는 등 극적인 역전극의 중심에 자리했다. 한 시즌 내내 양 어깨에 무거운 쇳덩이를 얹어놓은 듯 고심이 한가득했던 하라 감독도 그제야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기뻐했다. 이승엽도 비로소 선수단과 함께 하라 감독을 헹가래하며 시즌 전 바람을 실현시켰다.

올 시즌 성적만 놓고 본다면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부상 악재에도 이승엽은 시즌 막판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결사 기질을 발휘, 팀 우승과 함께 하라 감독을 헹가래침으로써 그간의 울분을 한 번에 씻어 보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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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명성과 굴레를 벗어 던지고 초연의 모습으로 과감히 돌아갈 수 있는 겸손함과
철저한 자기관리와 절대 포기하지 않은 열정과 기필코 우승하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이승엽..
나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를 감내하며 배려와 무한 신뢰를 보낸 하라 감독.

이 두사람의 신뢰와 조화로 밝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ican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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